저는 유시민 작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저는 정치에 관련해서는 완전 무관심론자라 신경도 안 쓰지만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잘하지는 못해도 좋아는 합니다. 하지만 어렵게 쓴 책들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근데 유시민 작가의 글은 정말 깔끔하고 명료하며 쉽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왠지 모르게 다른 책을 보다가도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이번에도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미뤄두고 이번에 출간된 '유럽 도시 기행 1권'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 : 전 포스팅 링크>
제목에서도 느낌이 오다시피 '1권'이라는 걸 보니 '2권'도 나올 거라고 예상이 되었었는데, 역시나 이번 1권에서는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여행에 대해서 썼고, 2권에서는 아마도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드레스덴을 별일이 없는 한 선보일 거라고 합니다.
책의 내용을 여기에 다 쓸 수는 없으니 처음 아테네를 좀 소개한 부분과 나머지 세 개의 도시에 대한 저자의 얘기에 대한 흥미 있는 부분들을 포스팅으로 남겨 보겠습니다. 책의 형식이 마치 제가 또다시 유럽 여행을 하는 듯하게,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조사한 것들에 대해서 짤막하게 파편들처럼 간략하게 서술해놨기 때문에 이 책을 마치 역사서라고 생각하시고 보신다면 좀 실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사실은 역사 부분에 대해서 저자의 많은 설명을 바라기는 했지만 이것은 책의 제목 그대로 '기행紀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여행을 통한 일기를 몰래 훔쳐본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 아테네 >> 멋있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
갑자기 자기반성하게 된 의도하지 않은 충고
작가는 유적지들을 둘러보면서 역사의 그것들이 마치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나랑 얘기하고 싶어? 그렇다면 나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고 와서 상상력을 최대로 펼쳐 봐!"
이 문장을 보고 저는 갑자기 제 예전 모습을 상기시키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십수 년이나 지난 서유럽 배낭여행을 했을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배낭 하나 딸랑 들고 43일 동안 런던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까지, 짧은 기간이라면 금세 지나가는 시간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많은 일들이 기억에 새롯새롯 남아있는 듯합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다녀와서도 느낀 점은 뭐가 대단했다. 감명 깊었다가 아녔습니다. 제가 느낀 건 '몰라서 못 느꼈다'입니다. 그냥 현지에서 가끔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만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남들이 많이 간다는 관광지를 지나다니면서 느낀 건, 뭔가 밥을 먹다가 만 기분이었습니다.
몰랐습니다. 돈 내고 비행기표 살 줄 알았는데 그 유명하다는 유적지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는 알았지만 그 허름하고 다 부서져가는 돌덩이를 왜 보러 온 건지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그냥 남들 가니까. 나도 가고 싶으니까 갔는데 목적 없이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에게 그것은 단지 진흙더미고 흉물스러운 경기장이고 웬 말도 안 되는 옷차림이었습니다. 지금은 책을 통해서 이것저것 그래도 머릿속에 들어오면서 궁금한 것들도 많이 생기고 "다시 한번 유럽에 가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도 많이 합니다.(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꼭 43일의 배낭여행을 다시 한번 할 겁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제가 그때 같았다면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사실 원형 경기장에서는 수많은 노예와 범죄자들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람은 그렇게 많이 죽지 않았고 동물이 훨씬 더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서 정교하고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주인이 자주 바뀐 그곳을 보면서 안타깝게 17세기에 베네치 아군의 공격에 저장된 화약이 연쇄로 터지며 그 역사가 무너져 내림을 느꼈을 텐데요.
그때는 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다른 나라니까 한번 가봐야지 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정말 현재에서 역사와의 만남을 가지고 싶었다면, 적어도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돌아온 대답에서 수만 가지의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제가 되어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약간은 현실을 후회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네요.
용도가 자주 바뀐 비운의 신전 : 파르테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이 신전이 처음 세워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었다면 얼마나 웅장하고 나를 짓눌렀을까 하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그 공간의 기세를 차지하기 위해 신들끼리 경쟁을 벌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파르테논 신전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뀐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그때그때 사회와 시민들의 요구로 인한 변화에 따라 믿는 신의 종류가 여러 번 바뀌게 되었다.
첫 주인은 파르테논이 지어진 이유인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 여신이다. 제우스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당시 임신 중인 애인 메티스를 한입에 삼켜버린다. 신화에서는 아테나가 머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의와 지혜, 지성, 전술, 전략, 예술 등등 그냥 다재다능하다 못해서 전지전능하다.(신이라서 그런가)
6세기에는 가톨릭이 교회로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모스크가 사원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남아있는 종교들이 한 번씩 지나쳤던 이곳은 마지막에는 급기야 오스만에 의해 점령되어 화약고로도 사용되다가 화약의 폭발로 인해 지붕과 기둥의 일부가 훼손되기도 한 불운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는 파르테논에 있던 조각상들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1799년 오스만 튀르크의 영국 대사 엘긴 백작이 그 당시 오스만의 관리들에게 로비를 했는지 파르테논의 일부 조각상들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었고, 영국은 이것을 열심히 날라다가 자신들의 박물관에 떡하니 가져다 놨다고 하네요. 그리스 정부는 계속해서 반환을 요청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들에 대한 안전조치인 듯이 배짱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독 당근즙? 독당근 즙?
책을 보던 중에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집행했을 당시 독당근 즙으로 몸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죽어간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식이 탄로 날 일이지만 저는 여태껏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줄(교수형이나 그 외 물리적인 집행) 알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장희빈(액션은 완전 반대였겠지만)처럼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쳤었네요.
그래서 찾아보니 독당근 즙은 독을 탄 당근즙이 아니고 독당근(우리나라에선 독미나리라고 불립니다)이라는 꽃이 있다고 합니다.
그 무서움에 비해서 반전적으로 꽃의 모양새는 정말 이쁩니다. 마치 자신을 먹은 이에게 복수의 칼날을 품고 있는 아리따운 처자의 자태처럼 청순하지만 그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는 그런 꽃이네요. 독당근은 다량을 복용만 해도 몸에 마비 상태가 오면서 고통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아프기까지 한 지독한 꽃이네요.
하지만 무엇이나 장단점은 있는 법입니다. 다량으로 복용을 했을 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적절한 곳에 적당한 용량으로 사용을 하면 과거에는 절단 수술을 할 때 유용한 마취제로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약간 어울리지 않은 꽃말을 가지고 있는(사랑에 대한) 이것을 먹고 죽었다고 하니 조금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뜻밖의 발견을 허락하는 도시 로마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 예전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캐사르, 시저, 차르, 카이저 들이 형태가 서로 다르지만 '카이사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근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라는 독재관으로서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했던 인물과 악연이 좀 있더군요.
술라가 그의 정치적 권력을 좀 더 강고히 만들기 위해 카이사르의 아내인 코넬리아의 아버지, 평민당 지도자 신나를 죽이게 됩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어리지만 그 비범함을 느낀 술라는 카이사르에게 코넬리아와 이혼을 하고 자신과 같이 뜻을 펼치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순정파(?) 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를 거절한 카이사르는 술라에게 미움을 사게 됩니다.
술라는 그를 처형하려 하지만 운 좋게도 먼저 이 얘기를 듣고 로마를 떠나 외국에서 방랑 생활을 하다가 술라가 준은 후에야 겨우 다시 로마로 복귀하여 공화정을 제정으로 바꾸려는 그의 야심을 펼치게 됩니다.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해적에게 잡혀 죽을 위기도 겨우 넘기지요. 죽음의 위험을 그렇게 겨우겨우 넘기고 이제 마지막으로 시저의 자리에 오르기 직전에 죽음을 당한 것이 약간 아쉽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가 죽지 않았다면 로마의 역사는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요?
북한의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에게 북한 정권을 이어받은 후 절대 권력을 견고히 하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들어갔었습니다. 사실 권력자가 되본 적이 없는 일반 사람들에게 숙청이라는 게 쉽게 와 닿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왜 굳이 누구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국가 최고 직위의 자리에 까지 올랐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수많은 절대 권력의 자리에 올라본 적이 있는 인물들은 그 왕좌의 자리에 앉아있는 순간부터 암살과 음모와 반역의 씨앗들이 여기저기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자신이 다스려야 하는 국가의 모든 이들에게 최고 통수권자인 그의 지위를 100% 인정받기는 힘들기 때문이죠. 인정이 안된다면 그를 끌어내릴 수도 있는 여지는 항상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숙청 작업이 꼭 필요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정적을 숙청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카이사르에게는 결국엔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브루투스에게 까지 배반의 칼날을 맞아야 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만을 위해서 쓴 통치서인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적을 밟으려면 확실하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밟아야 한다고 합니다. 거의 죽인다고 보면 되는 거죠. 모든 역사의 권력자들이 이렇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사실 군자 같은 왕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고 봐야 합니다. 권력이라는 자리는 항상 그런 자리였다는 것이죠.
하지만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해서 공화정이 제정 체제로 가는 것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미 대세는 민심으로 기울었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 공화정 추종자들은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명분 아닌 명분을 만들려다가 도리어 자신들이 패하게 될 빌미를 주었던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포로 로마노의 폐허 산책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더라도 포로 로마노에는 돌무더기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에게 역사란 그 공간과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은 정작 그 시간(현재)을 깨닫지 못하며, 그 역사를 궁금해하는 로망에 젖어있는 후손들이 화려하고도 비참했던 당시를 그리워하며 궁금해하게 됩니다. 훗날의 인류에게는 볼 수 없으니 안타깝지만 어찌 보면 우리도 현재 역사의 한 페이지라도 채워가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니 그것 또한 아쉬운 광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기행에서 저자는 건축물에 대한 역사나 그 당시의 건물에 관해 엮인 일화들 위주의 얘기를 자주 합니다. 사실 건축물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나는 이런 얘기들이 좀 지루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알아가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살던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역사관을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래도 역시 쉽게 눈이 가지는 않더군요.
건축물에 관한 얘기 중에 그리스 건 로마 건 비잔틴이던 그 당시의 건축을 위해서는 이전에 화려함과 권력을 한껏 뽐냈던 건축물들의 재료들을 재활용을 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마치 늙은 호랑이의 이빨을 뽑아다가 매섭게 갈아서 무기로 사용하듯, 자연 상태의 것은 아니지만 본래 있었던 것을 강탈이든 다시 쓰든 간에 그 당시 시대적으로 부족한 인력과 기술, 재료 등의 부재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듯합니다.
예를 들어, 이스탄불의 '지하 궁전' 같은 경우에는 어디선가 메두사 조각상의 머리 부분만을 가지고 와서 기둥의 길이를 맞추려고 기둥을 받쳐놨다고 합니다. 이건 굉장히 흥미 있는 얘기라서 구글에서 '이스탄불 지하궁전'을 찾아봤습니다. 진짜 메두사의 돌덩이 머리가 똑바로도 아니고 거꾸로 기둥을 떠받치는 형태로 받쳐놨더군요.
그 모양이 기괴하기도 해서 마치 메두사의 머리부터 목이 긴 기둥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말 재활용의 대가들이고 보이지 않는 지하수조의 역할을 하는 곳이니 당시의 현장 책임자는 지붕을 떠받치는 '기능'만 제대로 한다면 문제없을 거라 봤겠지만 역시 건축물의 인생살이도 너무 길어지면 어떤 우연성이 발현될지 모르는 것이라 뜻하지 않은 관광 메카가 돼버린 건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책에서 역사적 사실들보다는 진짜 캐릭터들의 스토리가 섞인 이야기들이 이 책에 대한 저의 흥미를 북돋아 주었지만 이런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보다는 사건과 흐름의 전개를 설명하는 부분들은 좀 몰입도를 주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 없는 건축물에 대한 것들을 말할 때는 그 영역은 그냥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이스탄불, 파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책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이 되신다면 공유와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책 '유럽 도시 기행1' 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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