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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f Think

나는 왜 새벽 3시에 일어나는가?(공부에 미친 사람들 - 김병완):공부의 6가지 이득과 방법에 관해.

by DaybreakerForWhat 2019. 5. 24.

책의 내용을 통해 제가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글을 작성하였고 책의 내용과는 다른 저의 생각이 다소 반영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책을 거의 안 보다시피 했던 독서능력이 매우 떨어졌던 사람입니다.(현재도 노력 중인) 2년 전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부터 아이가 나중에 성장했을 때 내 자식에게 알려줄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습니다. 그것이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교과 과정에 대한 것이 아닌 살아가는데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조언이나마 해줄 수 있을까 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컴퓨터 모니터를 받쳐주는 용도로나 쓰이고 있던 책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이 정도면 책을 얼마나 안 보던 사람이었는지 아실 겁니다. 책을 받침대 용도로 쓰고 있는...)

 

그러고보니 지금도 받치고 있...미안...

 

 그때부터였던 거 같습니다. 책을 도서관에서 한두 권씩 빌려보던 시기의 시작이었지요. 근데 직장인에 직장도 멀고 집에 들어오면 8시는 되었고 집에 오더라도 그때부터는 아이와 놀아주기 바쁘고 그것마저 1시간도 같이 놀아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아이에게 미안하답니다. 씻고 뭐하고 하다 보면 아이가 10시쯤에 잠이 들더군요.

근데 이제 책을 좀 보려고 책을 펼치면 하루 동안의 잡생각에 피곤함과 졸음이 몰려오면서 안 그래도 책을 안 보던 제가 책의 내용에 집중하기도 힘들어서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도 없이 그냥 억지로 텍스트만 읽고 있었습니다. 

 

뭐 상황이 그러다보니 책은 언감생심 몇 장 보는 것도 힘들더라고요.(그것도 졸면서 봤습니다) 그래서 10시에 아이와 같이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1년 전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고 있습니다. 

책을 보다보니 처음 목적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나 지혜를 전해줄 목적이었지만 점점 읽다 보니 무언가 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끼면서 세상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책으로 경험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이번에 보던 책의 내용이 제가 궁금해하던 위의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 같아서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저의 이야기와 연결하여 글을 써보려 합니다.

 

 

 공부는 무엇일까요? 갑자기 정의가 궁금해져서 위키백과에서 그 뜻의 정의를 살펴봤습니다.

 


 학습(學習) 또는 배움은 본능적인 변화인 성숙과는 달리, 직간접적 경험이나 훈련에 의해 지속적으로 지각하고, 인지하며, 변화시키는 행동 변화이다. 환경의 변화에 대한 생체의 일반적 적응과 신체적인 피로, 손상 등 일시적인 동기 부여 등에서 초래된 행동의 변화와는 구별된다. 학습과 공부가 대비되는 점은 학습이 외부적인 교육이나 현상에 대해 영향을 받는 데 비해 공부는 자발적인 면이 강하다.

                                                                                                        - 위키백과


 어린시절 학교나 대학에서 한다는 공부는 학습에 가까웠던 거 같습니다. 외부에서 얻게 되는 교육이나 현상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식으로 만들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겠죠. 근데 우리가 흔히 말하던 '공부'는 조금 다른 의미인 듯합니다. 공부는 자발적인 면이 강하다고 하는데 제가 책을 읽고 난 후 느끼는 저 의미는 우리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 관찰, 고찰, 통찰, 성찰을 통해서 어찌 보면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행위일 수도 있겠습니다.

책에서 본 글 중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진짜 공부가 시작되면 자신의 무지가 보이고, 아집이 보이며, 편협된 생각들이 보인다. 끝없는 자만에 빠졌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비뚤어진 자아의 실체가 정확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억눌리고 뒤틀린 과거의 나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성장하게끔 이끌어주는 수단공부다.


 공부를 목적으로 가지면 안 되고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도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책을 보면서 느낀 점 중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독서도 어찌 보면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보는 자극을 통해서 2차적으로 내면에서 무언가를 재생산해서 끌어올릴 수 있는 공부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공부가 가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득은 뭐가 있을까요? 

공부의 6가지 이득

 책에서는 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6가지가 있다고 설명을 하는데 여기서 제가 개인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확신, 지혜, 용기, 젊음에 관해서 쓰겠습니다.

 

- 확신 - 


"우리에게는 아침마다 우리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침대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 조지 번스(George Burns) -


 저에게는 글의 처음에도 말했다시피 제 몸을 새벽 3시마다 침대 밖으로 이끌어주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서에 관한 열망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성공을 향해가려는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처음에는 약간의 지혜를 얻어서 아이에게 조언이나마 해주자는 작은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따뜻한 이불 안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아들과 더 자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강해지는 계절이었습니다. 근데 저에게도 자아실현이라는 고차원적인 욕구가 있었나 봅니다. 지금보다, 아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메타 동기가 나를 안전하고 기분 좋은 저차원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이불 밖으로 끌어내 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아이는 아니고 남의 아이입니다.

 이렇듯이 저에게는 책을 보고 제 자신만의 공부를 통해서 약간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의 내가 책에 있는 글귀와 느낌, 정신을 얻는다면 오늘보다는 나아진 나를 내일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된 것입니다.

 

- 지혜 -


"우리는 우리가 던진 질문만큼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라고 약간은 협박성(?) 멘트가 책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하고 살까요? 그것들의 어느정도가 우리의 현명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들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부정적, 비관적인 질문을 나에게 묻는 만큼 그만큼의 답이 나올 것이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에 따른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결국엔 찾아내지 않을까요?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은 나의 몸과 정신에 이미 흡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의 다음 문제를 해결하는데 원동력이 되어 조금 더 수월한 과정을 가져다 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식(데이터)가 없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딱 우리가 아는 그만큼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수학, 과학, 국어 이런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필요한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삶에 대해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인문학, 역사, 인류, 고전 등의 책을 보고 있습니다(보려고 노력하고 있습...)

 

이것은 요즘 시대의 온라인의 데이터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빅데이터의 시대이죠. 온라인에 널리고 널린 게 데이터, 정보입니다. 데이터를 얻고 그것을 정보로 얻은 후 나의 지식(Knowledge)으로 만들고 '공부'를 통해 지혜를 만드는 과정을 저는 책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혜(Wisdom)들이 내 머릿속에 모인다면 서로 충돌과 결합의 과정들을 통해서 창의적 문제 해결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글은 여기↓)

https://dbfw.tistory.com/21

 

 삶은 선택의 연속 -> 올바른 질문 -> 올바른 대답 -> 옳은 선택 -> 수많은 선택(습관) -> 나의 삶을 구성

 

이것이 선순환 구조로 사이클을 이루며 공부를 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변화를 보게 될 수 있을까요? 특히 올바른 질문은 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큰 수확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책의 내용 중 민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중에서 세계적으로 보자면 0.2%의 인구수의 비율을 가지고 있지만 노벨상은 22% 이상의 수상 비율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책에서 유대인의 교육방침 중 하브루타에 관해서 말합니다.

 

하브루타는 여러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탈무드를 토대로 책상에 두 명이 서로 마주 앉아 토론과 논쟁을 이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교육방법이 어릴 때부터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해나가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답을 찾지는 않습니다. 답을 찾는다기 보다는 답이 있다 해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이의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른 생각이 씨앗이 되어 서로 살과 피를 나눠 붙이며 하나의 결합된 생각을 만들어 각종 질문에 대한 통찰과 분석, 이해 능력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조금 번외적인 내용의 얘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책의 얘기 중 


 "모든 문명, 모든 문화는 역경과 고난을 딛고 올라서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 -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또 한 번 느낀 점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저항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비행기도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며 그것을 이용해 더욱 높이 올라갈 수 있듯이, 또한 단단한 주물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융점보다 높은 온도에서 가열하여 액체로 만드는 옛시대의 검 제작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검의 입장에서는 담금질과 수없는 자신을 향한 두드림이 굉장히 뜨겁고 고통으로 밀려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하면서도 자신이 점점 단단해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처음의 자기 모습보다 훨씬 강해진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시련과 고난이 오면 그것에 의해 무너지던가 이겨내는 것 두 가지 중 하나인데 무너지려는 건 인간이 가진 기본 욕구 중에 생존본능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겨내려 하는 것이고 이때 우리에게 고통이 오게 됩니다.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은 인간에게 항상 질문과 선택을 통해 탑을 찾고 그것을 이겨내게 했으며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 용기 -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공부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무언가를 제대로 알아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이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인간을 만든다

- 제임스 앨런(James Allen) -


 인간의 생각과 상상력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실현이 되어 현실로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특히 '두려움'은 인간이 가진 기본 감정중의 하나입니다. 더욱 근원적으로 들어가자면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부터 두려움이 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 근데 갑자기 또 딴 얘기로 빠져서 죄송하지만 생에 대한 집착이 정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저는 우리의 DNA가 '우리'와는 별게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약간 슬퍼지지만 우리의 행동과 생각, 물리적 나의 형태 등을 만들어 준 것은 우리의 DNA라고 생각합니다(물론 DNA가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요.) 환경과 수많은 변수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이룬 것이겠지만 그 시작은 우리의 유전자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DNA가 우리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 생각에는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숙주가 살아있어야 안전하게 DNA도 기생해서 DNA의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다 라는 것처럼(왠지 무섭...) 말이죠.

 

그렇다면 DNA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요? 생존하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DNA가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생존이 필요할 때마다 말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의 뇌에 기본 옵션인 감정을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일단 살려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걱정하여 미리 준비하거나 아니면 즉각 반응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우리 앞에 맹수가 나타났는데 "안녕?"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관련 글은 여기↓)

https://dbfw.tistory.com/16

 


그렇기에 두려움을 내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버리려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그렇다고 우리는 계속 두려워해야 할까요? 아니겠죠. 무엇이든 너무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두려움을 느끼고 이것을 재료로 마치 연금술사가 된 것처럼 지혜라는 도구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버리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책에서 느낀 게 이것을 우리는 진정한 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젊음 -


"사람은 호기심이 없어지면서부터 늙는다

배우면 젊어지고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

-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


 물리적으로 영원히 젊게 살아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일도 공부의 일종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는데요. 우리가 일을 놓게 된다고 하면 그 후부터는 퇴화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거죠. 사실 저도 진짜 어쩌다가 긴 휴가를 보내게 되면 어디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상은 괜히 제 자신이 쓸모없어진 것 같고 제 몸이나 정신적으로 무언가가 굉장히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받더라고요.

이것이 정신적 퇴화입니다. 우리의 뇌는 판단할지도 모릅니다. 

 

"아!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가? 그럼 일부 기능을 꺼놓고 생명유지에 필요한 부분들만 유지시켜야겠다."

 

라고요. 그러니 우리의 정신과 뇌가 수많은 기능을 [OFF] 시키지 않도록 [ON]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공자의 논어 [자한]子罕 편에는 이런 글귀가 있답니다.

 


학문을 하는 것은 산을 만드는 일과 같다.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붓지 않아

산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멈춤은 내가 멈춘 것이며

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부어도

그 나아감은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에 공부는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공부를 한다는 건 공부의 진정한 뜻과는 어울리지 않겠죠. 그리고 공자의 말씀처럼 산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의 공부이고 한 줌이라도 흙이 쌓여있다고 해도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니겠죠? 

 

우리 모두 흙을 한 줌 한 줌 쌓아서 산을 만들듯이 하루하루 공부를 이어나간다면 나의 산이 든든한 안식처, 버팀목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를 지니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DBFW의 - <공부에 미친 사람들> 마인드맵 -

 

- 마인드맵 가지 구성 세부 내용 -


이 글은 책 '공부에 미친 사람들' 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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