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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f Think

내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금방 변하는 내 감정은 어찌해야 하나요?)

by DaybreakerForWhat 2019.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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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대리인 이라는 단어를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이라는 단어와 누군가를 대신해서 무언가를 해준다는 뜻의 단어가 합쳐진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근데 저에게는 약간 어색하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단어 하나씩의 정의를 먼저 찾아봤습니다.

 


- 감정 -

감정은 사람이 오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것으로,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등이 있다.

- 대리인 -

민법상 대리인(代理人)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여 표시하는 자이므로 단순히 본인의 의사를 전달, 완성시키는 사자(使者)와는 다르다.

 

<위키백과>

 


 

이라고 정의가 나와있는데, 제가 어색했던 까닭은 감정이라는 것은 '내'가 느끼는 것인데 그 말인즉슨 주체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내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감을 해 줄 수는 있겠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으로 가져와서 그대로 느끼기에는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 단어에서는 이것이 가능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감정대리인, 감정을 대신해서 느껴준다? 아니 왜 내 감정을 대신해서 느껴주거나 남의 감정을 가져와서 내 감정에다 덮어 씌운다는 거지요? 무슨 컴퓨터 파일도 아니고 Ctrl+C, Ctrl+V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사실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슬플 때 남의 행복 감정에 커서를 대고 복사 붙여 넣기... 생각만 해도 짜릿해집니다)

 

마음의 Ctrl+C,  Ctrl+V

 근데 요즘은 감정대리인에 관련된 단어로 감정대행인,감정대변인,감정관리인 등이 있다고 합니다. 

 

 

 

 < 감정대행인 >

내가 직접 느끼고 싶은 감정이나 상황이 있지만 지금 당장에 내가 그것을 느끼기에는 힘들지만 다른 이의 경험이나 사례를 통해서 읽고 보면서 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느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요즘 유튜브에서 중소기업에 다니시던 분이 콘텐츠를 만들어서 찍는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저의 감정을 공감을 받는 느낌을 받으면서 결국에는 유튜버 분께서 퇴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오는 짜릿함이 마치 제가 멋지게 사표를 던지고 마지막 퇴근을 하는듯한 미묘한 감정을 받아보았습니다. 

이렇게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접하고 싶은 것들을 대신해주는 콘텐츠들은 감정대행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1인 미디어 시장이 더욱더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걸리면 퇴사각

< 감정대변인 >

 이것도 감정대행인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대행을 대변(그거 아님)으로만 바꾼 것입니다. 대신해서 변론을 한다는 얘기겠지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신나게 대신해준다고 보시면 쉬울 거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지만 직접적으로 하기에는 그렇고 할 기회도 마땅찮은데 누군가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주거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본다면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할 것입니다. 

 

가끔 페이스북이나 SNS를 보다가 기사라던지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있을 때 감정이 막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저는 범죄나 어이없는 기사에서 분노를 자주 하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댓글을 달려고 댓글창으로 내려보면 제가 쓰고 싶은 말이 이미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써놓은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댓글을 안 달기도 뭐하고 하니 좋아요나 공감을 한 번씩 해주고 나온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놓은 글을 보고 감정의 공감을 느끼게 해 줄 수는 있는 역할이 감정대변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좋아요'는 내 감정을 대변해줘서 고마워인가ㅋ

 

< 감정관리인 >

내가 오늘 좀 센티하다, 아프다, 행복하다 하다면 그때그때의 감정에 맞춰서 나의 취향을 저격해 줄 수 있는 말 그대로 나의 감정을 관리해주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딱히 사람이 아니어도 요즘 같이 AI나 기술의 발전을 빠르고 지나고 있을 때 수많은 감정관리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도 예를 들어 저는 음악 앱에서 음악을 듣기 전에 뭐를 들어야 하나 할 때가 있습니다. 맨날 듣던 거 듣기도 지겹고 지금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런데 앱에는 그런 기능이 있더라고요. 썸네일로 크게 몇 가지 그림으로 표현되는 몇 개의 선택 버튼이 있고 터치를 했을 경우 그때의 기분에 맞는 분위기의 음악이나 노래를 틀어주더라고요. 

 

이렇게 나의 기분을 큐레이션 해 줄 수 있는 감정관리인을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책 '2019 트렌드 코리아'의 내용을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 DBFW느낌표 ▣

 

책을 보며 이번 주제에 대해서 노트에 제가 생각한 점에 대해서 짧게 글을 써본 게 있어서 공유해보려 합니다.

 저는 감정(Emotion)이라는게 인간에게 왜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아 사실 생각이 아니고 전에 책에서 봤던 글을 빌려서 써보자면 

 

 만약에 인류 초기에 내 앞에 인간인 나보다 상위 포식자였던 맹수가 나타났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이성적으로 따지고 있을 순간은 아니겠죠? 내가 뛰면 몇 프로의 확률로 살고 죽은 척을 하면 어느 정도고 어쩌고...하다가 냠냠 쩝쩝당하고 말겠죠.

이성적으로 사자님하고 협상을 할텐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감정의 영역에서부터 나의 몸을 치고 달리게 만들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달려!! 죽기 전에! 네가 가장 빨리 달릴 수 있을 만큼 뛰어서 도망가란 말이야!"

 

라고 내 감정의 외침이 나에게 전달해주겠죠. 일단 공포의 감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게 감정은 생존에 관련해 없어서는 안 되는 생존 도구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이성만 가지고 누가 시켜서 "너는 사랑을 해야 한다"라고 한다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인류를 보존시킬 수는 없겠죠?)

 

 

 

 근데 책을 읽다 보니 감정과잉 이라는 단어가 나오더군요. 딱 들어도 감정이 지나치게 어딘가로 유입되는 느낌입니다. 온라인 특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이렇게 대중화와 접근의 편리함이 없었을 때의 감정은 오프라인의 외부 영향에 의해서만 발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새로운 감정 발생의 주기가 길었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말은 오늘 가지고 있던 감정은 내일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도 수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으며 그것도 가끔은 마치 내 일 인듯 몰입하면서 감정을 마구 소비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방금 클릭한 기사나 글에서 분노를 느꼈다가도 몇 분 뒤 다른 글과 사건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감정 변화도 한두 번이지 우리가 기사나 글, 사건 등을 한두 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우리의 마음에선 감정을 보여주는 내부자가(마음) 굉장히 혼란스럽고 당혹해 할 수가 있습니다.

진짜 웃어야 돼 말아야 돼가 나오는 상황인 겁니다.

무슨 감정을 원하는겁니까? 주인양반!!

 

 이 일을 하다 저 일을 하면 업무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와 에너지가 평소의 배가 듭니다. 이게 무슨 감정의 멀티태스킹도 아니고 마치

 

"웃으면서 무섭지만 기쁘기도 하며 화나지만 울음이 난다!!"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매번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반응을 한다면 몸안의 생존에 관여된 '감정의 필요'도 점점 퇴화하게 될지 모릅니다. 너무 자주 일어나는 감정 때문에 그냥 그런 느낌이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감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무감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남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겠지만 감정의 무반응이라고 말하면 좀 더 나을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매번 SNS에서 아직도 내전 중인 국가들의 상황을 기사를 통해 자주 접한다고 본다면 한두 번은 마음이 아프다거나 안타깝다, 불쌍하다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그것이 너무 짧은 주기로 일으켜지는 감정이라면 나의 생존본능도 너무 피곤하다고 느낄 수 있어 역설적으로 이것에 대한 감정을 스킵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곤한 거죠.

원숭피곤

 감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뇌의 이성 영역을 담당하는 부분만이 단순한 정보로만 받아들일 뿐 더 이상 감정의 열띤 반응을 기대하기는 힘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무감정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감정을 잃고 싶지가 않습니다. 더 많은 마음의 동요를 물에 몸을 맡기듯이 두둥실 떠다니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팔과 다리, 호흡 등의 움직임 조절로 우리를 물 위에 떠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감정의 반응을 '통제', 아니 통제라는 단어는 너무 딱딱하고 '조절'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살에 휩쓸리거나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감정의 노예도 피지배자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감정이 왔을 때 잠시 내 옆에 두되 그와 한 몸이 되지는 않는 것, 잠깐의 소통은 있지만 싸우지는 않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야 하지는 않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이라는 내 친구들과 잠시 만나 놀고 해가 지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져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안뇽~다음에 다시 만나자~

여기까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내 감정과 친구가 될 수 있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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