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of Think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도구 4가지『강원국의 글쓰기 』- 강원국 / 첫번째 이야기

by DaybreakerForWhat 2019. 12. 6.

 항상 책 리뷰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큰 마음먹고 앉으면 바로 일어나고 싶어 집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만큼 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책을 보긴 했는데 내용을 어떻게 정리할지 쉽게 생각도 안 나고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할지도 쉽지가 않습니다. 근데 이번 '강원국의 글쓰기'를 보고 처음에 봤던 내용에서부터 약간 자신감을 얻게 되었네요.

100점

 100점 맞으려 처음부터 완벽하려고 하다 보면 첫 부분에서 시간을 다 보낼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이라도 채워가면서 지금 쓸 수 있는 것을 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시작조차 시작하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단은 시작하고 진행해가면서 수정하고 개선해가면서 완벽을 향해서 가야지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하면 뭐하러 뭔가를 위해서 노력할까요? 만들어가는 것이지 만들어져 있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는 거죠. 항상 욕심이 문제입니다. 하다 보면 점점 늘어납니다. 쓸 것은 쓰고 빼야 할 것을 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완벽으로 향해가는 길이라는 겁니다.

나의 입장이 아닌 글을 보는 이의 입장에서 내 욕심이 아닌 독자의 욕망을 어떻게 채워줄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도 글쓰기의 핵심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쓰려고 하는 주제에 집중하고 관련 없는 얘기는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내 삶에 고비가 왔다고 생각이 든다면 일단 실행하세요. 몸을 먼저 움직여서 거기에 대한 생각, 불만 등은 나중에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남자분이라면 군대 훈련소를 처음에 들어갔을 때 언제 군생활을 끝내게 될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군생활을 하다 보면 끝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군대에서의 모든 시간이 훈련소 같지만은 않고 신병 때만 같지는 않습니다. 글도 쓰다 보면 써진답니다.

욕심에 관해

 위에도 얘기했듯이 글을 쓰기 어려운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잘 쓰려는 욕심, 아는 체 하려는 욕심, 길게 쓰려는 욕심, 멋있어 보이려는 욕심, 있어 보이려는 욕심 등이 글을 쓰는 걸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욕심이란 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것을 수십 번, 수백 번 도전하고도 얻지 못한 마음이 욕심이 아니라, 무언가 시도를 적게 하고 심지어 아예 하지도 않으면서 빨리 그것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욕심이 아닐까요?



양질 전환

성과라고 쓴겁니다. 악필죄송.

 무언가 노력할 때는 쉽게 성과가 보이지 않아 중간에 포기하려 하기 마련입니다. 가시적으로 금세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성과라는 것은 노력을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지표가 아닙니다. 어떻게 노력하냐의 문제도 있지만 방법이 그리 틀리지만 않는다면, 성과는 계단 형태로 변하게 됩니다.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하나의 계단을 올라가기 직전에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참지 못해서 포기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이렇게 중간에 끊기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절대 중간부터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은 접으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기 전까지의 단계까지는 다시 오기는 전보다는 수월하겠지요. 하지만 자신이 포기했던 지점에 이르면 다시 포기하기도 쉽습니다. 

이때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뭐 대단한 방법을 원하시겠지만 세상이 사실 그렇게 많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계속하는 겁니다. 무언가 완벽한 상태가 되겠다가 아닌, 글을 오늘 두줄 썼으면 내일도 두줄 쓰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세줄, 다섯 줄, 한 장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몇 계단을 올라와 있는 거죠.

목표가 너무 높으면 계단을 오르기 전에 포기해버리고 말 거예요. 100층을 올라가야 하는데 100층까지 생각하지 말고 1층, 2층까지만 생각하세요. 어떤 유튜브가 그러더라고요. 자신이 매일 영상을 올렸답니다. 그냥 잘되든 안되든 꾸준하게 올렸더니 어느새 구독자와 조회수가 자신이 생각하던 목표 이상으로 올라와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점점 완벽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무언가 완벽하게 편집하고 완벽한 문구에 완벽한 장소와 장비 세팅까지 하고 영상을 찍으려고 준비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몇 개 찍고 포기해버리는 유튜브가 많은 상황에서 뭔가 제가 말한 메시지에 부합하는 현실적인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도 지금 되는대로 일단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질지는 모르지만..."이런 글을 내가 보고 있단 말이야?" 이러면서 말이죠. 근데 일단 쓰다 보니까 벌써 너무 많이 써버렸네요.

관심, 관찰, 관계의 3관

 이건 사실 저에게 정말, 너무나도 간절하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분들에게도 마찬가지 겠지만요.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만이 아니고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살고) 계신 분들이라면 당연히 필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질문, 여기서는 글쓰기에 대하고 말하고 있으니까, 질문은 정말 모든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의문을 가지고 파고든다는 게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그만큼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관계 또한 맺지 않습니다. 그냥 다 무관심합니다. 세상이 저를 내버려 두고 나도 세상을 내버려 두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제가 과연 어떻게 저 3관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책에서 3관에 대해서 말하는 대목을 보고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관심이 생긴 거네요. 

왜? 우리는(저는) 다른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전 특히 주변에 있는 것에 대해 그리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첫째로,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다는 건 무엇일까요? 관심이 있다는 건 또 무엇일까요? 전 태생이 호기심이 없게 태어난 걸까요? 아닐 겁니다.

 만약 제가 나의 주변 것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이 다쳤을 리가 없습니다.(죽을 뻔 한적도 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었다는 증거라고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도 많이 다쳐서 이렇게 된 걸까요?

제가 항상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주로 날벌레들을 볼 때죠. 파리나 모기나 곤충들을 볼 때면, 이들이 생을 마감할 때는 늙어서 죽는 건 거의 볼 수가 없고, 누군가에게 먹히거나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죠. 근데 이게 다 그들의 호기심이 시작입니다. 굳이 거길 가서 손바닥에 압사당할 필요가 없는데도 꾸역꾸역 날아갑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생존에 대한 열망이라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은 결국에 살아가기 위한 기본 요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먹이를 찾고 좀 더 좋은 환경을 찾아서 다니다가 죽는 겁니다. 굉장히 위험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말이지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부지하기가 또 어렵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호기심을 갖는 것인데, 저는 삶에 대한 열망이 없어서 그럴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글은 또 왜 쓰고 있는 걸까요? 글쓰기에 대한 책 한번 보고 여러 가지 생각만 떠오르는 하루입니다. 주절주절 이렇게 쓰면 글을 잘 쓰는 게 아니겠죠.(자제해야지..) 결론은 '답을 하는 사람이 아닌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자'입니다. 답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지만 질문이란 것을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죠.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을 다양하게 던지고 고민해보는 사람이 여기서 말하는 3관의 삼관왕이 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어보겠습니다.

플로베르 :  "우리 집 계단이 몇 개인 줄은 아나?"

제자 : "....!!"

그렇게 스승의 집에 오랫동안 찾아갔던 제자도 스승의 집의 계단이 몇 개인지는 신경 써본 적이 없다는 거죠. 관심, 관찰, 관계의 3관을 가졌다면 수많은 것들이 질문거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질문에 질문을 내놓고 결국에는 궁극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거죠.

글을 쓰기 위한 도구 4가지 도구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꾸준히 사용해둬야 하는 도구 4가지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습관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적으로 몸에 익히게 된다면 글만이 아니고 어떤 작업을 하든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그 4가지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독서

 저는 독서가 자신의 생각을 만드는 도구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독서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네요. 심지어 강원국 저자는 책을 본 후 자기의 생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분해서라도 읽기를 멈추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생각 만들기 강박증(?)'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네요. 

하지만 책을 본다는 건 쉬운 활동이 아닙니다. 유튜브를 통한 영상이나 라디오를 이용해 귀로 소리를 듣는, 수동적이고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입력되는 활동과는 다른 게 바로 독서입니다. 그래서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죠. 쉽게 집중하기도 힘들고요.(유튜브를 볼 때는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되는 것과 비교가 되죠)

어쩔 때는 한 페이지 보는데도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 때도 있답니다. 이렇게 겉으로만 봤을 때는 시간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책을 보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독서하는 시간을 괜히 낭비한 것은 아닐까라는 분한 마음이 든다는 겁니다. 저도 이 글을 보니까 살짝 분노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도 책을 보면서 눈으로 단순히 텍스트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으로 우리는 모두 책을 볼 때는 최대한 글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 글자의 조합들을 통해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토론

 생각이 만들어졌다면 다음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만들어 세상 밖으로 내뱉는 것입니다. 말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을 하고 들으면서 생각이 정리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의 귀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죠. 사실은 상대방의 귀에는 왼쪽으로 들어갔다가 오른쪽으로 나가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왜냐면 항상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서 듣는 일은 극히 드물거든요. 그래서 듣는 게 참 중요하다는 얘기고요.

다시 말하는 걸로 돌아와서, 내가 입 밖으로 뱉은 말이 공기의 진동을 만들어내어 결국에는 우리의 귀로 다시 들어와서 뇌가 인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에는 우리도 다시 그 내용에 대해서 정리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학습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학습

 여기서 학습은 책상에 앉아서 문제집 푸는 게 아닙니다. 유튜브, 영화, 만화를 봐도 학습입니다. 그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은 게 있으면 이것 또한 학습입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죠.

 그리고 문제를 듣고 이해하는 것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저자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비판하기와 창의력을 키워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모

 저는 최근 들어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 순간이 있으면 이런 말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나는 나의 기억을 신뢰하지 않는다(믿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굉장히 부정적이죠. 어떻게 나의 기억을 내가 믿지를 못하는지 말이죠.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일까요. 

하지만 이로 인해서 번뜩 생각이 나거나 필요에 의해서 기억이 필요한 것들은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길을 가다가도 적고, 전자책을 보다가도 적습니다.(그래서 최근에 메모를 하기 용이한 스마트폰으로 바꾸었죠) 저자는 메모는 완전하지 못한 나의 생각, 아이디어의 키워드로 된 파편이라고 합니다. 이 파편들을 모으고 모으면 무언가 그럴싸한 글감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생겼습니다. 그것은 메모를 꼭 다시 보는 것입니다. 아주 오랜 후에 꺼내봐도 상관은 없을 듯합니다. 핵심은 다시 꺼내서 내 머릿속에 담아보는 것입니다. 과거의 내 생각과 현재의 내 생각이 만나 사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나는 다시 새로운 메모 거리나 글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왜 쓰지?

 글을 쓰기 전에 '왜 쓰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냥'이라는 단어가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진실되지 않은 답 같습니다. '그냥'이라는 것은 절대 없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행한 행동에는 '목적', '목표', '이유' 등의 인과관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래야 사회적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명분이 만들어집니다. 명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들의 문명으로 만들어진 세계인데 안 그럴 리가 없죠. 명분이 없다면 행동하는 나도 찝찝하지만 주변에서 가만두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데도 ''가 있어야 합니다. 하물며 속된 이유라고 폄하할지라도 '돈'때문이라고라도 정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잘 팔릴 수 있는(볼 수 있는) 글을 쓸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감성과 이성

 "이성은 열정의 노예에 불과하다."

- 데이비드 흄(David Hume)

 "나는 감성을 더 중시하는 사람인가 이성에 무게를 좀 더 두는 사람인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자는 감성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엔 이성도 감성으로 인한 판단과 선택의 합리화를 위한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이성은 감성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일들, 오히려 감정만으로 문제를 대하기에는 더욱 큰 문제를 만드는 진화과정의 필연적 출현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현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사회적, 인간적, 정치적, 경제적 등의 많은 문제에서 이성의 중요도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효율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에선 이성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인류사의 세월로 보더라도 인간의 생존에는 감성(감정)이 항상 우선시되었습니다.

만약 맹수를 만나면 공포와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며 빠른 행동을 요구했고 그에 따라서 인간은 좀 더 효율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했을 겁니다. 바로 '이성적인 생각'이 그것입니다. 

말이 좀 엉뚱하게 흘렀지만 결론은 감정에 의한 글을 쓰는 것이 본인이나 타인을 위해서도 좀 더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일 것입니다.(물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써야 하는 정보를 준다던가 하는 목적의 글 외) 인간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을 당하고 반박할 수 없기에 그때는 수긍하더라도, 나중에는 다시 반박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쉽게 변하지 않죠.

머리로 이해를 하더라도 가슴이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면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입니다. 감성과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이라면 높은 공감과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자신합니다. 자신을 한다는 것이지 제가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이 되신다면 공유와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출처- INTERPARK

이 글은 책 '강원국의 글쓰기' 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