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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f Think

역사는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역사의 쓸모》최태성

by DaybreakerForWhat 2019. 9. 21.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 -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역사를 통한 배움, 역사는 반복이다. 우리가 현재 가진 고민들은 과거의 인물들이 해왔던 것이고 해결하거나 고민했던 것들이다. 이미 있는 것들을 왜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지 못하는가. 역사를 알고 이것들을 반면교사를 삼아 내 삶에 적용한다면 보다 현명하게 삶에 대해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책에선 주로 역사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에서 느낄 수 있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닌 저자 스스로 느끼고 있는 식의 에세이 형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역사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현상이나 개인적 문제들과도 비교해가며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과거에만 묶여 있는 것과 같은 다른 역서사와는 좀 다른 기분이었다. 물론 지루하지도 않고 쉽게 술술 읽히는 것이 부담도 되지 않았다. 

 저자는 교사였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약간 과거의 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기도 했다. 과거 내가 배웠던 '국사'를 배우는 기분이랄까...하지만 학생 때처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사실은 학생 때 관심을 뒀어야 하는 건데) 이번에는 꽤 집중하면서 봤었던 것 같다. 왜 그 당시에는 역사 속의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통해서 많은 이점을 얻을 생각을 안 했었는지 좀 아쉽기도 하다.(이제와 후회하면 무엇하리오)

역사가 쓸모가 있을까? '쓸모'란 목적이 있고 그것을 달성하는데 뭔가 도움이 된다는 말인데 역사는 무슨 일에 도움이 될까? 역사라는게 결국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돌고도는 인간사에서 변치 않는 원칙, 법칙이라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을 우리가 통찰적으로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면 그것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들로 인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충분한 '쓸모'가 있을 거라고 단언하고 말할 수 있다.

 


사람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다' (P292)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정해놓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흘려간다라는 표현으로 개념화 된 것이다. 그 시간의 흐름도 사람을 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단지 시간의 흐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니 결국엔 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공부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을 알게되면 사회를 알 수가 있고, 사회를 알게 되면 국가를 알게 되며, 국가를 알게 되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인류를 알게 된다. 결국엔 사람이다. 사람이 중심이고 핵심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도 사람 간에 관계에 목적이 있다고 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기에 역사를 알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과 뜻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사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역사의 흐름속에 지나가는 하나의 장면이다. 이 장면이 역사의 다른 장면들과 연관이 없을리가 없다. 우리가 이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된다면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좀 더 이해를 하게 되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무엇이 사회 문제의 핵심인지 알게 된다.

핵심이 무엇인지 알게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도 알 수가 있을 테니 역사를 안다는 것은 개인으로나 사회적으로 정말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세대 간 갈등

 역사 이야기를 하면 아주 먼 옛날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에도 여러 세대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그들도 제각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나이 어린 젊은 세대들이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일제시대나 전쟁과 그 후의 폐허가 된 국가의 복구 과정 등을 지내온 세대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세대가 어릴수록 윗세대가 하는 행동은 이해가 안 되며 그건 윗세대들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받아들이려면 짧지만 상대방의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고 겉으로만 훑어보는 것이 아닌 좀 더 가깝게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도 가장 어렵지만 제일 필요한 인정과 수용이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역사의식

 저자는 특히나 역사의식에 대해서 몇번 언급한다. 역사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던 인물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의식이 어떠냐에 따라서 후세들이 받는 것이 고통이냐 아니면 축복이었느냐가 정해지게 되었다. 나라가 넘어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현재만을 생각하고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의 책임감 없는 선택은 후대에 이르러 박한 평가를 받았다.

이에 반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는 않았지만 후손들을 생각하고 본인의 역사적 평가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들은 현재까지도 위대한 인물로서 우리들이 대우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 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의식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다시 한번

 처음에 말했던 주제를 다시 말해보자면 역사는 쓸모가 있을까? 없을까? 이렇게 물어본다면 누가 "역사 따위는 쓸모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사실 아주까지는 아니지만 좀 쓸모없는 방식으로 쓸모있는 역사를 배워온 것은 아닐까? 년도를 외우고 역사적 인물이 만들어 놓은 업적을 외우는 방법 등은 시험에만 필요하다.

우리가 그러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현실이 만들어낸 교육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렇다고 늦은 것일까? 우리의 삶이 시험을 보고 끝나는 것이 었다면 이미 늦은 것이겠지만 시험이 우리의 인생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서서히 깨닫는 나이가 되면서 진정한 역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법으로 역사를 만날 수 있을까? 역사를 만난다는 것은 사실 좀 모순적인 얘기가 아닐까 한다. 이미 지나간 것들을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온갖 상상력으로 다른 동물은 이룩하지 못한 인류의 문명을 실제로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역사를 만나는 것 또한 못할 일도 아니다. 

 역사를 만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 박물관 등을 가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과거의 물건과 정신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기회를 만드는 것, 미디어를 통해서 얻는 것 등 역사를 접하는 것을 한 가지 방식에만 국한을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중에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가장 쉽게 역사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이 역사를 살아왔던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 당시에 살면서 인물의 환경, 행동, 심리, 감정 등을 상상해보면서 마치 내가 그가 된 것처럼 혹은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인터뷰 형식으로 알아간다면 역사에 대해서 이해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추천한다)

 어떤 인물을 만나야 할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인물이다. 인물이라고 하니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위대하신 세종대왕님이나 다산 정약용 등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개인이 아닌 인물들도 존재한다.

물론 이름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역사를 배우는 우리로서는 '희망'을 품게 해줄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역사 속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싸웠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해 줄수 있는 부분이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가 있는 것이고 그분들이 자신들의 희생을 치르지 않았다면 없었을 현재이다.

예를 들어 동학농민운동은 말 그대로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던 인물들이 '농민'이다.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그 당시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던,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중에는 신분제 폐지 같은 결과가 이런 사건들 하나하나에서부터 기인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책에서는 다산 정약용 같은 훌륭한 분들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사실 정약용 선생은 실력에 비해 나라의 중요 요직에 올라가지는 못하였다. 그의 벗이자 군주였던 정조가 정약용의 오점중 하나인 종교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배까지 가야 하는 신세로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폐족이 된 이후에는 오히려 후세에 책을 남기며 자신이 현재는 비록 비난을 받는 위치에 있을지라도 후대까지 생각하여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라는 멀리 내다보는 안목까지 있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대목도 책에 있다.

역사에 대해서 고리타분하고 이미 지난간 일들이라고 현재만을 살아가기도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면, 오히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또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미래에 대해서 예언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명한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은 이러한 얘기를 했다.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이다." 당신이 미래에 대해서 예언을 듣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과거' 예언자님을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오늘도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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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ES24


이 글은 책 '역사의 쓸모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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