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 세일합니다. 죄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 지금 잡으세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 면죄부를 팔아서 필요한 자금을 모으려고 했던 교황청의 노력이 점점 극에 달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면죄부로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면벌부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나와 아내는 가끔 주말에 마트에 가는데 세일하는 품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지금 집에 사놓은 맥주도 많은데 굳이 싸게 판다고 해서 사놔야 하나?"
"그래도 사놓자 싸게 파는데 어차피 먹을거"
물건 하나 사는데도 이렇게 마트에서 적극적으로 광고하고 마케팅 들어오면 해당 물건을 증오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는 못할 겁니다. 근데 만약에 그 물건이 "너의 죄를 없던 걸로 만들어주마" 하는 면죄부라면 어떨까요?
평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한건당 한 장을 사야 하나 여러 건을 한 번에 면해준다는 건가?라는 계산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교황 율리오 2세가 이렇게 면죄부 판매와 교황청에 자금을 가져다주는 사업을 대놓고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교수로 있던 마틴 루터였습니다.
교황청이 "돈궤에 쨍그렁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연옥에서 고통받던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 라는 어이없는 말까지 서슴없이 해버린 상황에 참지 못하고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에 있는 교회의 문에다가 95개 논제(95 Thesen) 또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올렸습니다.
제가 여기서 하려는 말은 종교개혁을 다루자는 건 아닙니다.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던 반박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남게 된 이유 중 하나와 연관이 있다는 걸 말해보고 싶습니다.
이 95개 논제는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손으로 쓴 게 아닙니다. 무언가로 찍어낸 거죠? 이때 시대가 1500년도니까 컴퓨터로 찍어낸 건 아닐 겁니다. 그 일등 공신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가 대중화에 성공한 활판 인쇄술입니다.
그런데 이 활판 인쇄술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구텐베르크가 활판 제작할 때 옆에서 활판 조각해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실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과거에 민중에 의한 혁명은 지식과 정보의 보급이 큰 요인중 하나였다. 또한 그 매개체중 하나는 책이었다."
입니다. 이러한 결론까지 오기 전에 다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에 대해 책에서 보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인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중에 외부환경의 요소가 하나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의문을 제기하다 보니 어느새 '인쇄술'과 '혁명'에 관한 얘기까지 들춰보게 되었습니다.
뭐 결국엔 개인의 탁월한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빨(?)이라고 하기에는 동시대에 살던 누구나가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누군가는 위대한 인물이 되고 또 다른 이는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갈 뿐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굉장한 독서가에 메모광 이였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노트만 해도 몇천 부에서 몇만 부까지 논란은 있지만 메모에 대한 애정이 굉장했다고 합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 사라진 것들도 상당하다고 하니 거의 평생을 적어왔다고 보면 될듯합니다. 뭘 그렇게 적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었을 수도 있지만 다빈치는 누구나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독서매니아 였기때문에 책을 보고 이해하고 사색 후 판단한 결과들을 적어놓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다빈치가 태어났을 때는 책이 너무 귀해서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야 도서를 자비로 주고 산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책이라는 게 인쇄소에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직접 보고 필사를 하던가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그 가격부터가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책이란 게 전부 스페셜 한정판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리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로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이라는 매체를 쉽게 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버지가 집안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힘들게 몇 권의 책들을 구해다 주었지만 IQ만 205라는 설이 있는 그에 물음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겠지요.
이런 그의 갈증을 채워주기 위해 그 당시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1450~1500년까지 50년 동안 총 50년 동안 총 3만 종의 책을 2천만 부나 찍어내게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만 해도 지난 천년 동안 찍어낸 책 보다 많은 권수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있어서 이것은 무언가 톱니바퀴가 딱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겠지요. 천재에게 무기가 하나 생긴 겁니다. 책에서 중요한 건 남의 경험을 내가 겪은 듯이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직접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예를 들자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버지 친구가 방패에 무서운 괴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그림을 위해서 동물들을 산채로 해부하고 그것들을 접합까지 해가며 가장 무서운 괴물을 그려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근데 책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머릿속에 들어오니 천재로서는 그것들을 다시 밖으로 글로써 토해내어 수많은 아이디어를 적고 실행에 옮겨 인류에 위대한 작품들은 남겼던 것입니다.
요즘은 책을 구하기도 쉽고 글을 쓰기도 쉬운 정말 누구나가 특혜를 가지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기득권들이 가지고 있는 본인들의 특혜권을 놓지 않기 위해 지니고 있는 하나의 무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절대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겠죠.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에도 나와있더라고요. 유시민 작가가 한참 20대의 혈기왕성한 시절에 썼었던 메모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책을 보고 사유했던 생각들과 그로 인해서 표출되었던 것들의 표현이었겠지요. 근데 현재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 시절에 권력층에 계신 분들이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이 뭘 읽고 뭘 쓰느냐에 까지 관심을 두고 있어서 정부에 뜻에 반하는 것들이라면 요즘은 이해가 안 될 정도의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시민 작가는 메모를 쓰고 그것을 불에 태워 없앴다고 합니다.
요즘은 누가 내가 사색하고 느낀 감정들에 대해서 적어놨다고 뭐라고 합니까? 무슨 내용의 책을 본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근데 왜 안 보고 안 쓰는 걸까요?(사실 이건 제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마오쩌둥의 스승 쉬터리(서특립)은 청년 교사 시절 '십년 독서 파산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근데 10년도 못 채우고 책을 사다 보니 8년 만에 주머니에 남은 돈이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고 합니다.
이건 너무 극단적이지만 저도 그 정도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십 년 파산이 아닌 십년발전을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습관을 꿋꿋하게 이어 나가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모두들 힘내서 오늘도 책과 나만의 생각을 적어보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이 되신다면 공유와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Book of Thin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을 읽어도 남는게 없는 이유가 뭘까요? (독서할때 꼭 해야할 것 중 하나) <부제:월급만 받는 내 머릿속 직원 만들기> (2) | 2019.07.03 |
---|---|
정약용의 책 읽는 5단계 《초서독서법-김병완》('읽기'라 쓰고 '쓰기'라 읽는다) (7) | 2019.06.29 |
가성비 좋은 작은 투자로 목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 ≪에고라는 적 - Ryan Holiday≫ 두번째 이야기 (2) | 2019.06.23 |
Being? Doing? 무엇을 선택하실 건가요? <에고라는 적 - Ryan Holiday> (0) | 2019.06.19 |
나는 언제부터 넘어지는걸 두려워했을까?(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5) | 2019.06.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