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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f Think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방법 3가지《마음의 과학》- 마틴 셀리그먼(학습된 무기력) [자괴감,무기력증에 잘 빠지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by DaybreakerForWhat 2019. 7. 20.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말이 있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과 그의 동료들이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에 발견했던 회피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개념이다. 오래된 만큼 많이 알려진 개념이다. 

만약 개, 쥐, 코끼리 등의 동물에게 기분만 좀 나쁠 정도의 전기적 자극을 가하는 장치가 있고 그걸 당하고 있는 동물은 그 위치에서 도망가지 못한다는 설정을 해둔다. 주변에 버튼이 하나 있는데 이걸 누른다면 전기자극은 멈춘다. 경험을 통해 이 동물은 부정적 자극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던 방법 중 유일했던 버튼을 없애버리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또 다른 버튼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굉장히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내 버튼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통제 불가능) 이것이 장기화된다면 해당 동물은 곧 무력함,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포기해 버리게 돼버린다.

이런 상황을 사람이라고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도 동물이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이다. 자신에게 닥친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노력을 해보는 게 이 세상에 창조된 모든 생물들의 기본 욕구이다. 이것은 생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몸안에 기록되어 있는 행동 지침 같은 거다. 한데 아무리 이리저리 부딪히고 벗어나려고 애를 써봐도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면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얘기만 들어서는 그럴듯하다. 누구나가 위와 같이 된다면 어쩌겠는가. 아무리 해봐도 안된다는 걸 알게 된다면 자신의 무력함에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의지도 없다. 뭘 먹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다. 그러면서 스스로 상상의 나래는 잘 펼친다. 부정적인 생각이 서로 꼬리잡기 하면서 부정생각 이웃간에 도와주며 스멀스멀 올라온다. 악순환의 시작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과 현실에서 사람들의 경험으로 밝혀진 '학습된 무기력'에서 반대쪽 면에 위치한 의문이 하나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통제 불능의 사건을 접하면 여덟 중에 다섯만 무력해진다면 나머지는 무력하게 만들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력하게 만들 수 없었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이 상황을 타개하려 노력했다는 얘기인데, 왜 같은 동물이고 사람인데 이런 경우가 생길까?



결코 무력해지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건과 대면했을 때 그 사건은 일시적이고 통제 가능하며 국소적이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력해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부정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것은 영구적이고 통제 불가능하고 만연하며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통제가 가능하다 vs 가능하지 않다.
문제가 작다 vs 크다.
원인은 내 잘못이 아니다 vs 내 잘못이다.


왜 같은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다른 차이가 생길까? 

첫 번째로 자신의 능력이나 외부의 조건보다는 본인의 생각의 차이인 것이다. 사실 통제가 가능한지 안 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들이닥친 문제이기 때문에 미래 시점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근데 내 머리에서는 판단해버린다. 그것이 가능하다. 안하다로 구분을 짓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구분을 만드는 것을 동물, 특히 인간은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유전자에 그렇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는가? 좋다, 기쁘다, 괜찮다, 나쁘다, 위험하다 등등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속성을 부여하는 구분을 하게된다. 기본은 생존이기 때문에 아주 먼 과거의 인류는 저 맹수가 나보다 크다, 작다, 강하다, 약하다, 먹을 수 있다, 먹힐 수 있다 등등 매 순간순간이 구분을 짓는 행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근데 지금은 당장에 죽는 것은 아니다. 통제된 사회 시스템 하에서 내가 지금 이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누군가 내 목숨을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무력해지고 무력해지면 자신의 목숨을 자신이 앗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런 극단적 선택까지 갈 수가 있는 굉장히 위험한게 무기력함에 빠지는 것이다.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우리의 몸속에 새겨진 이런 구분 짓고 판단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에는 구분 짓고 판단할게 너무 많아서 뇌의 피로도 때문이라도 쉽게 선택하려 한다. 사실 문제는 도전하거나 포기해버리면 된다. 근데 그것의 크기를 따지고 가능 여부가 어떻네 누구 잘못이네를 찾고 있으면 문제 해결 과정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의 몸과 뇌는 피곤해져서 다 그만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뭔가 시도할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판가름은 생각이다. 구분을 잘 짓는 생각의 힘을 키워야 한다. 긍정적인 구분을 짓는 생각의 능력은 누구든 키울 수 있다. 뭐 100미터를 국가대표처럼 뛰라는 것 신체적 한계를 넘으라는 얘기도 아니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두 번째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점인데 좀 이기적이 되자라는 것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나 때문이다. 저것도 나 때문이고 모든 일이 내가 원인인 것 같다. 심지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면 그것도 나 때문인 것 같다. 에어컨 청소를 안 하니 냄새가 나는 거다. 우리 때문인 거다.

잘못을 나에게로 자꾸 돌리면 모든 일이 책임을 져야 할거 같고 그것을 모두 해결해야 할 것 같다. 근데 이것도 한두 개 여야 통제가 가능하지. 무슨 문제만 있으면 다 내가 가져와서 해결하려고 한다. 왜냐면 그냥 내 잘못인 것 같기 때문이다. 좀 이기적이 되어서 문제를 나눠주는 연습을 하자. 이 문제의 반은 내 거, 반은 당신 거 하면서 같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생각을 너무 부풀리지 말자. 지금 이 문제가 정말로 큰 문제인가? 이걸 당장에 어떻게 하지 못하면 나는 생을 마감하는 심각한 문제인가? 대부부의 문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커다란 문제여서 통제가 불가능한 게 아니다. 문제가 큰 게 아니고 당신이 문제를 과대 포장하는 능력이 큰 거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봤고 자신의 능력이 안된다면 누군가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그 상황을 끝을 내야 하는 것인데, 결코 무력해지지 않는 사람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이고 어디서부터는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고 다른 이에게 힘을 빌릴 줄 안다. 무력해지는 사람은 그것마저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포기라고 하기보다 그냥 안 하는 거다. 아무것도 하기 싫기 때문인 것이다.

Helplessness라는 단어의 뜻에는 '의지할 데 없음'이라는 의미도 있다. 기댈만한 곳이 정말 없는 건지 Help를 받아 딛고 일어날 생각을 해보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지금 맞닥뜨린 문제가 너무도 큰 부담이기에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레짐작 숨고 보는 것이다. 아직 이번 문제랑 눈도 못 마주쳤는데 이미 학습된 무기력 때문에 볼 용기 조차 낼 수 없다. 

의외로 문제는 작을 수 있다. 생각보단 할 만하고 별게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일단 문제의 크기를 명확하고 냉정한 시각으로 정확히 판단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크기가 정확히 보이면 그에 대한 해결점도 깨끗하게 볼 수 있다.


이 글은 책 '마음의 과학' 의 '마틴 셀리그먼' 장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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