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얼마 전에 SNS에서 경제공부 관련 포스팅 글을 보고 보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 들렸는데 갑자기 그 글을 봤던 게 생각이 나서 빌리게 되었네요. 근데 저는 블로그에 주로 서평을 쓰고는 있지만 전체 책의 내용에 대해 정리요약 하는 능력이 32개월 차에 접어든 우리아이가 양치질하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않기에 이렇게 갑자기 느낌 팍 오는 문장이나 단어에 꽂혀서 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오늘은 '자란다'라는 말과 '키운다'라는 것에 대해서 책의 저자가 빵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들에 대해서 유기재료와 자연재료에 대한 얘기를 하는 페이지에서 갑자기 옛날 시절이 떠오르면서 "이런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병아리를 키우다
어렸을 때 가끔씩 학교 앞에 좌판을 벌여놓고 힘이 없어 보이는 삐약삐약 외치며 자신을 사가라고 외치는 듯한 영업력에 이끌려 병아리를 몇 번 사본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곧 죽을 거 뭐하러 그런 거 사냐고 갖다 버리라고 생명경시(生命輕視) 사상을 자주 내 앞에서 베풀어 주시던 어머니에게 어린 반발심에 꼭 폭풍 성장력을 가진 슈퍼 닭을 만들어 보겠다는 치기를 부렸다.
한데 이게 내 머릿속 청사진대로는 이뤄지지는 않았다. 최대한의 노력으로(어린 아이지만) 보살피고 먹이도 잘 주고 방과 후에는 하루 종일 병아리에게 매달려 있었다. 내가 자주 봐주고 자주 안아주고 나의 손이 많이 가며 신경을 많이 쓸수록 잘 자라 줄거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항상 울면서 집 근처 나무 아래에 묻어주는 일을 제외하고는 꼬꼬댁하면서 뛰어다니는 성체(成體)로까지 키워본 적이 없는 실패율 100%였다.
어느 날도 어김없이 이전 땅속에 고이 묻어주었던 이전 기수 병아리와의 추억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입증하듯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채 병아리를 또 한 마리 입양해서 어머니의 '어이구 지 아빠 닮아가지고'라고 써져있는 듯한 눈길을 가볍게 무시한 채 병아리 성장 프로젝트를 또 시작했다.
의외의 결과
근데 그때쯤에 어린 나이에도 굉장히 바빴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들하고 노는 게 더 좋아지기도 하고 뭔가 다른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는지 우리 집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는걸 아예 잊지는 않았지만 좀 설렁설렁 키운듯하다. 그래도 먹이는 꼬박꼬박 줬는데 이전만큼 애지중지 받들지는 않았고 그만큼 내 손도 덜 탔다.
학교에서 시험기간이라 나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방문을 여니 뭔가가 푸드덕하면서 뛰어다니는 게 아닌가. 용케도 아직 생명의 끈을 놓지 않은 아니 스스로 끈을 몇 개는 더 이어놓은 듯한 어린 닭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그것을 보고 새삼스레 놀랐던 것 같다.
키운다? 자란다?
키운다와 자란다는 뭐가 다를까? 나는 병아리를 잘 키워보겠다고 내 품안에서 험난한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한답시고 모든 걸 떠다 먹여주고 손으로 주물럭거리고 같이 잠도 자고 내 곁에만 있어야 얘는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근데 그게 아니였나보다. 먹이는 주되 떠서 먹이진 않고 가끔씩 험한 바깥 마당 세상에 풀어주면 초원의 사냥꾼 사자라도 된 듯이 온갖 벌레와 풀 가지 들을 헤집어놓고 독립적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배우면서 병아리는 그렇게 닭으로 자라고 있었던 듯하다.
물론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면 한쪽으로 몰아주는 극단적 자세를 취하면 안 된다. 대신에 비율은 다를 수 있다. '키운다'가 30이면 '자란다'는 70이어야 한다. 그것의 비율은 자라는 쪽으로 점점 몰리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이 자연의 법칙이고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럼 뭔가가 틀어져서 키우려고 하는 행위자와 자라려고 하는 당사자간에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새삼스레 책을 보다가 작물 키우는 법에 대해서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어쩌다 보니 이런 글을 쓰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 의해 키워지고 또 스스로 자라게 된다. 몸적인 부분에서는 자라는 게 멈추고 반대로 가는 길 밖에는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자라남은 아직 멈추지 않았고 죽기 직전까지도 그것은 자연의 관성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그 후
아! 그리고 그 닭은 조금 더 키우다가 갑자기 어느날 사라져서 도망갔나 했더니 우리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형장의 이슬이 되어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셨습니다. 어쩐지 왠 백숙인가 했었는데 그렇게 우리들이 '자라나는데' 보탬이 되어주었던 거였군요.
오늘도 부족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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